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바람이 분다를 보고 왔다. 5년만의 신작이며, 감독의 은퇴작이 된 바람이 분다’. 너무나도 아쉬운 마침표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개봉 전부터 전범 미화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영화가 논란을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물론 영화가 시종일관 논란을 해소하는데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보여왔던 가치가 바람이 분다에서는 다소 모호해져 버리는 느낌까지 받았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바람이 분다가 노골적으로 일본의 전쟁범죄나 그에 가담한 사람들을 미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람이 분다에는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될 정도로 자기 파괴적인 이미지들이 많이 등장했다. 오프닝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소년 지로가 구름 사이로 나온 새까만 비행기들로 인해 추락하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설계자가 된 지로의 꿈 속에서 추락하는 일본군의 비행기까지, 절망적 이미지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른 작품들에도 파괴적 이미지는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 이야기 중에 자리잡은 위기 혹은 역경의 상황에서 나타났지만, ‘바람이 분다에선 자기 안에 가지고 있었던 한계로서의 어두운 이미지를 계속해서 보여준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서 전쟁을 은유적으로 비판할 뿐 아니라, 지로의 고뇌와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지로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우리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를 묻는다. 성찰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치고는 너무나 싱겁게, 그래도 나는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겠어-라며 크게 회의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를 보며 가장 아쉬웠던 부분인데, ‘바람이 분다를 보며 관객들이 던지는 비판에 대해 다소 무책임한 대답을 내놓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지로(영화 속의)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무책임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는 대목이었다.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지로의 꿈이 시퀀스 사이사이에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갖는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는 연출이었다(동시에 감독의 지향성도 드러내면서 변명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사실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이탈리아의 비행기 설계자 카프로니 백작이 지로의 꿈에 항상 등장,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카프로니 백작 또한 아름다운 비행기를 전쟁에 쓰는 것을 싫어하며 전쟁이 끝나면 폭탄이 아닌 사람을 나르는 비행기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꿈에서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나 전쟁도 폭격도 세상의 어두운 부분은 다 잊고 아름다운 하늘과 비행기만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지로의 꿈이라기 보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꿈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지로의 평화로운 성격이나 꿈의 내용, 발언 등을 통해 계속해서 전쟁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 지로는 전쟁에 쓰일 비행기를 만드는 길을 선택한다. 그것이 전쟁에 쓰일 것을 알면서도,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전쟁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감독의 지향이 보였지만, 전쟁을 해야 하는 현실과 아름다운 비행기 제작의 꿈이 부조화하는데서 오는 모순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 모순을 마음에 남겨 둔 채, 현실을 따라 간다는 선택이 끝끝내 아쉬웠다.




감독의 필모그래피 최초(이자 마지막)로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바람이 분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영화에서 지로는 심하게 정의로우면서 낭만적이고 정도 많은 인물이다. 호리코시 지로가 실제로 그런 인물이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감독 자신의 자아 혹은 지향적 인간상이 투영되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를 돌아본 것이 아닐까. 지로의 동료 설계자 혼조가, 불쌍한 아이들에게 카스테라를 건냈던 지로에게 위선자라고 핀잔한 것은 마치 감독이 스스로에게 한 얘기처럼 들렸다.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모순과 위선을 드러내고 관객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이다. 팬으로서는 아쉬운 마침표지만, 감독에겐 의미 있는 마무리였을까. 그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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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과비 :